강제징용의 흔적 @일본

하시마 섬 (군함도) 이야기

(사진 출처: 울산매일UTV)

  ‘하시마 섬’은 일본 나가사키에 있는 무인도로, 섬의 외양이 마치 일본의 해상 군함처럼 생겼다고 하여 군함도 (군칸지마)라고도 불립니다.
  1810년에 이 섬에서 석탄이 발견되었고, 1890년에 훗날 대표적인 전범 기업이 된 미쓰비시의 소유가 된 후 석탄 채굴이 시작되었습니다. 1916년에는 일본 최초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집합 주택 (아파트)이 건설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극장 등도 건설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에는 조선인을 강제 징용하여 석탄 채굴 노동을 시켰으며, 특히 1938년에 <국가총동원법>이 제정된 이후에는 해당 법령을 이용해 조선인들을 강제 징용했습니다.
  이 섬은 ‘지옥섬’이나 ‘감옥도’로도 불렸는데, 영화 <군함도>에도 나오는 것처럼 막장이 비좁아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어 포복 자세로, 혹은 엎드려서 석탄을 캐야 할 정도였는데도, 조선인 노동자들은 그곳에서 하루 12시간씩 강제 노역을 해야만 했습니다. 스며드는 바닷물로 인한 피부병이나 탄광 사고 (가스로 인한 폭발 등), 영양 실조 등으로 사망한 분들도 많습니다.
  실제로 가까스로 섬을 탈출했으나 붙잡힌 조선인 강제 징용 노동자들이 있다고 하지만, 이 섬에서 탈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고 설령 탈출한다고 해도 육지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던 섬이기 때문에 바다에 빠져 죽거나 다시 붙잡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1945년 8월 광복 직전에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 폭탄으로 인해, 하시마 섬 탄광의 강제 징용 노동자들은 원폭 사후 처리에도 동원되었으며, 이로 인해 피폭된 노동자들도 발생했습니다.
  1960년 이후에는 주요 에너지가 석탄에서 석유로 바뀌어 가면서 하시마 섬 탄광은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1974년 폐산되어 그 후 모든 주민들이 섬을 떠나 무인도로 남게 됩니다.

하시마 섬,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의 이면

  2015년 7월 5일, 일본 정부의 추진 끝에 하시마 섬은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철강, 조선, 탄광’이라는 제목과 1850년~1910년이라는 대상 기간으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에 최종 등재되었습니다. 즉, 일제 강점기 이전만을 등재 대상으로 하여 전쟁 기간 동안 조선인 노동자들을 강제 징용했던 사실을 숨겨 군함도의 진실을 왜곡하려 한 것입니다. 또한, 등재 제목과는 달리 조선인 노동자들이 강제 노역을 했던 하시마 탄광이나 나가사키 조선소 등도 같이 등재되어 논란이 된 바 있기도 합니다.
  또한, 몇 년 전부터 일본은 이곳에 관광객을 유치하여 하시마 섬이 일본 최초의 아파트도 지어졌던 근대화 유적이라는 식으로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군함도의 역사를 왜곡하고 일본의 산업 혁명을 상징하는 장소라는 것만을 부각시켰으며, 이에 대한 우리나라의 반발로 인해 "강제 징용이 있었다"는 사실을 적시할 것을 조건으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에 등재되었지만, 일본은 아직까지도 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토로 마을 이야기

(출처: 살아있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우토로 마을은, 일본 교토부 우지시 이세다정 우토로 51번지에 있는 조선인 강제 징용 노동자 마을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 중이었던 1941년, 교토 군비행장 건설을 위해 조선인 노동자 1300여 명이 동원되었는데, 이들의 합숙을 위해 건설된 마을입니다. 하지만, 1945년 8월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고 패망하면서 비행장 건설이 중단되자 이들은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하게 되었고, 일본에게서 전후 보상을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고국으로 돌아갈 뱃삯이 없어 우토로 마을에 정착하여 무허가 정착촌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그들이 일군 터전인 우토로 마을마저 재개발될 위기에 처해 있어 안타까운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