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원폭 피해의 배경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폭 피해를 입은 배경으로는 일제의 식민지배와 강제 징용, 정치·외교적 요인으로 인한 미국의 원폭투하 결정을 들 수 있습니다. 
  먼저 일제의 식민 지배와 강제 징용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제국주의 일본은 중·일 전쟁이나 태평양 전쟁 등의 침략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아시아 및 태평양 지역, 특히 자신들의 식민지였던 한반도에서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하고 자금을 통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강제 징용'이란 일제가 노동력 보충을 위해 조선인을 강제노동에 동원 및 종사케 한 일을 말합니다. 중·일 전쟁 이전에는 모집을 통해 노동을 시켰지만, 중·일 전쟁이 발발한 1937년 즈음에는 강제동원이 전면화되었습니다. 특히 국가 총동원법이 시행된 뒤에는 강제적으로 징용해 갔습니다. 흔히들 ‘강제 징용’이라고 하면 해외로 끌려가신 분들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인천 부평구에 있었던 육군 조병창이나 제주도의 가마오름, 송악산 진지동굴, 알뜨르 비행장과 같이 국내로 징용되어 강제 노동에 종사한 분들도 많습니다.
  1938년 일제는 국가 총동원법을 공포하여 일본 본토와 식민지의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하기 시작했고, 그 이듬해인 1939년에는 국민 징용령을 제정하여 조선인들을 본격적으로 징용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합니다. 일제의 강제 동원은 겉보기에는 일본 본토의 기업이 조선 총독부에 할당 인원을 신청하면 지역별로 인원을 차출해 가는 방식이었지만, 대다수는 징용에 응하지 않으면 식량 배급마저 끊어 버리겠다는 일제의 협박 때문에 강제적으로 끌려가 일본 각지의 탄광과 군수 시설에 배치되어 일제의 수탈과 턱없이 낮은 임금, 열악한 작업환경 아래에서 일해야 했던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미국이 원폭 투하를 한 목적과 요인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1945년 당시 미국 트루먼 대통령은 ‘일본의 전쟁 능력을 파괴시키고’ ‘전쟁의 고통을 단축시키며’ ‘수백 만의 미국인을 구하기 위해’ 원자 폭탄을 투하했다고 발표했는데, 이 논리는 1960년대까지 미국의 원폭 투하 결정 논의에서 주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실제 목적이 아니라 입장 표명에 불과하며 미국의 논리와 정당성을 뒷받침하여 그들에게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을 차단하는 방패막으로 작용합니다. 당시 트루먼 대통령의 군사수석 보좌관이었던 리이 제독과 당시 연합군 총사령부 사령관 아이젠하워의 주장에 따르면, 미국이 원폭을 투하하지 않았더라도 일본이 머지않아 항복했을 것이라는 판단을 쉽게 내릴 수 있습니다. 원폭 투하 이전에도 일본은 연합군에 의해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었고, 소련의 선전포고와 참전으로 인해 ‘무조건 항복’을 논의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미국의 원폭투하 결정은 의도적인 무차별 살상 행위였고, 주거지역이 밀집한 곳에 출근 시간에 원폭을 투하하여 민간인들을 겨냥한 반인도적 행위였습니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 볼 때, 미국의 원폭 투하는 인명 구제와 종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종전 이후에 국제 사회에서 정치·외교적으로 우위에 서기 위해 저지른 계산된 행위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